직장암 수술을 받은 후에는 외과에서 혈액종양내과로 옮기게된다. 재수술이나 장루복원술 같은 특별한 이슈를 제외하고는 외과의사선생님은 만나지 않아도 된다. 수술 후 만난 혈액종양내과 의사는 나에게 6개월간 폴폭스 항암치료를 할 것이라고 했다. 항암치료는 수술 이후 5주정도 안에 받는게 효과가 제일 좋은데 나는 아프기전에 준비했던 일본여행이 있어 6주가 넘어 항암치료 일정을 세우게 되었다. 치료일정이 늦어지니 의사의 표정도 좋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딸이 처음으로 해외로 여행을 나가는 거라 너무 기대하고 있어 여행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항암치료도 항암치료였지만 여행을 위해서도 나는 몸을 빠르게 회복해야했다.
복강경 수술은 개복 수술에 비해 회복이 빠르지만, 그래도 몸에 큰 변화를 주는 과정이었다. 특히 장을 절제한 만큼 소화와 배변 활동이 달라졌고, 몸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빠른 회복을 위해 정말 열심히 걸었다. 처음에는 거실을 뱅글뱅글 돌며 살살 걸어다니기 시작했고, 이후 런닝머신을 제일 낮은 단계로 맞추고 걷기시작했다. 점차 몸이 좋아지면서부터는 집 뒷산 트렉을 돌기 시작했다.
- 퇴원 후 일상 복귀를 위한 노력
수술 후 퇴원한다고 해서 바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몸은 여전히 움직임이는 것이 힘들었고, 작은 움직임에도 피로감을 느꼈다. 퇴원 후 내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 배변 습관 조절
변의가 계속 느껴져 하루에도 몇번씩 화장실을 가야 했다. 처음에는 변비가 심해 변을 볼때마다 기절할것같은 통증도 느꼈다. 변이 나오는 중간에 걸리면 너무 아파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변을 보면서도 담요를 덮어 체온을 유지해야했다. 그리고 건식 족욕기를 구입하여 엉덩이와 발을 따뜻하게 하였고, 미니전기방석으로 배를 덮어 통증을 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비가 너무 심할때는 일단 푸른주스를 이용해보고 효과가 없을때는 마그밀을 처방받아 먹었다.
- 복부 관리
복강경 수술이라 흉터는 작았지만, 내부가 완전히 회복되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무거운 물건을 들면 배에 통증이 있어 물건을 일체 들지 않았고, 갑작스러운 움직임도 피했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도 주의했다. 수술하고 재채기를 했는데 정말 너무 아팠었는데 그때처럼은 아니어도 여전히 재채기할때 통증은 있었다.
- 식사 조절
기름진 음식,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소화가 잘되는 부드러운 음식 중심으로 식단을 구성해야하는데 사실 식단은 조절이 힘들었다. 내가 직접 요리할 수 있을만큼 몸이 회복되지도 않았고 누가 나를 위해 매끼를 차려줄 형편도 되지않아 처음에는 암환자를 위한 도시락 배달 등을 알아봤었다. 그런데 암환자를 위한 도시락이 아니어도 샐러드를 날짜에 맞게 배달해주는 곳들이 많이 생겨서 그것과 먹고싶은 음식을 구매하거나 배달해 먹었다.
- 기초 체력 유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처음에는 가벼운 걷기부터 시작했다. 하루 10~15분씩 천천히 걷는 것으로 몸을 움직였고, 피로감을 느끼면 무리하지 않고 충분히 쉬었다. 점차 런닝머신의 수치를 높여 걸었으며 걷는시간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뒷산을 도는것은 체력관리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집에서 런닝머신을 타는것과는 달리 산은 경사도 많고 굴곡도 많아 같은 시간을 걸어도 두배 이상은 힘이 들었다. 하지만 상쾌한 공기를 맡으며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관찰하는 것은 힘든것을 상쇄할 만큼 즐거운 일이었다. 비슷한 시각에 산에 오르면 늘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관찰하는 일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어떤날은 나무위를 오가는 청설모를 볼때도 있었고 자벌레가 기어가는 모습을 볼때도 있었다.
- 캐모포트(chemoport) 삽입 시술, 항암 치료를 위한 준비
항암치료를 받기전 나는 캐모포트 삽입 시술을 해야했다. 캐모포트는 항암제를 정맥으로 투여할 때 사용하는 장기적인 중심정맥관으로, 가슴 부위 피부 아래에 작은 장치를 삽입하는 방식이었다. 보통 오른쪽에 심는데 오른쪽 유방이나 그 주변 림프절을 절제했을 경우는 왼쪽에 심기도 한다.
처음에는 주사를 맞으면 되지, 굳이 이런 시술까지 받아야 할까 싶었다. 하지만 항암 치료가 반복되면서 혈관이 손상될 수 있고, 정맥이 약해지면 약물 주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실제로 항암제는 혈관을 자극하는 성질이 있어 말초 정맥을 통해 투여하면 염증이 생기거나 혈관이 망가질 위험이 컸다.
캐모포트 삽입 시술은 간단하다고 하던데 나는 너무 무서웠다. 캐모포트를 삽입할 부분에 국소마취를 한 후 절개를 하여 기구를 피부안으로 넣고 그것이 끝이아니라 캐모포트줄이 혈관에 연결되어야하기 때문에 피부를 마구 쑤시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정말 힘들었다. 시술 후 처음 며칠 동안은 부위가 뻐근하고 뭔가 이물감이 느껴져 이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적응할 수 있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캐모포트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항암주사바늘을 캐모포트에 그냥 꽂기만 하면 되니 혈관을 찾아 꽂을 때의 고통이 필요없고, 혈관 손상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시술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캐모포트는 항암 치료를 조금 더 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장치라는 점을 꼭 전하고 싶다.
- 항암 치료 전, 정신적인 준비
항암 치료는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미리 항암 치료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충분한 영양 섭취의 중요성, 면역력 관리, 치료 중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항암치료 전에 딸과 함께 가게될 여행을 생각하며 기분좋은 생각들을 많이 했고 여행지에서도 잘 걸어다닐 수 있게 운동을 열심히했다. 그래서 여행하는 동안 하루 이만보이상을 걸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데 여행할때 캐모포트를 삽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고 비행기를 타야했는데, 캐모포트를 심은 것은 괜찮다고 하는데 살을 고정해놓은 스테이플러가 터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비행내내 시술한 부위에 손을 대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온천을 할때도 캐모포트 시술자리가 덜 아물어 물이 묻으면 안되니 발만 담그었다. 그래도 너무 따뜻했다.
수술 후 항암 전까지,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
직장암 3기 복강경 수술 후 항암 치료 전까지의 과정은 단순한 회복 기간이 아니라, 다음 치료를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이때 어떻게 몸을 관리하느냐에 따라 항암 치료를 더 수월하게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더 힘들게 보낼 수도 있었다.
나는 이 기간 동안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루하루 몸의 상태를 체크하며 열심히 운동했고, 우울해질때마다 긍정적인 생각들을 많이해 정신을 잘 다스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과정이 없었다면 항암 치료를 더 힘들게 받았을지도 모른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올바른 관리를 통해 다음 치료를 준비하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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